폴란드-카자흐스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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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근대
2.2. 20세기
2.3. 21세기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폴란드카자흐스탄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와의 관계와 달리 카자흐스탄과는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다.


2. 역사적 관계[편집]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폴란드 출신 수도자킵차크 칸국에 사절로 파견한 적이 있었다.

2.1. 근대[편집]


18세기말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에 의해 3차례에 의해 분할되었다. 러시아 제국 영내 폴란드인들은 1830년 11월 및 1863년 1월 2차례 대대적인 봉기를 일으켰으나 진압되었고, 당시 포로가 된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은 러시아 제국 전역으로 유배를 당했다. 폴란드인들은 유배 이외에도 교역 혹은 공무 수행의 이유로 중앙아시아 각지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1897년부터 1905년 사이의 인구조사 결과 러시아 제국 인구 조사 당시 중앙아시아에는 이미 11,579명의 폴란드인이 있었으며 90%가 남성이었다 한다.

당시 카자흐스탄에는 폴란드계 러시아인들만 이주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슬라브계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타타르족 등도 함께 이주하였다.

2.2. 20세기[편집]


1917년 러시아 제국혁명으로 몰락하고 1922년 소련이 출범한 뒤에 소련-폴란드 전쟁이 벌어졌다. 카자흐스탄 지역에는 소련의 구성국 중 하나인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들어섰다. 1930년대 이오시프 스탈린대숙청 당시 약 25만여 명의 폴란드계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당했고, 이들 중 약 10만여 명이 도착한 첫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한다.

2차대전 초반 독소 불가침 조약 이후 소련이 폴란드 동부 영토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약 15만여 명의 폴란드인들이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강제이주당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주로 갈리치아 일대의 폴란드인들이 카자흐스탄 일대로 강제이주 당했다. 당시 이주당한 사람들 중 80%는 여성과 어린이였다. 이렇게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당한 폴란드인들 중 일부는 운이 좋은 경우 영국과 소련 사이의 협상 결과에 따라 이란의 난민 수용소로 이송되었으나,[1] 상당수는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영내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소련의 승리로 종결되면서, 폴란드에는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란 공산 정권이 들어섰다. 폴란드가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입국이 되면서 명목상 우호국가가 되면서, 소련에서는 2차대전 당시 카자흐스탄으로 유배당했던 폴란드인들을 다시 폴란드로 송환하였다. 하지만 소련이 송환한 폴란드인 인구는 2차대전 독소 전쟁 직전 포로가 되어 유배당한 사람들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스탈린 대숙청 당시 벨라루스우크라이나 일대의 폴란드계 러시아인 인구가 강제이주 당한 경우는 송환 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 이들이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영토로 다시 귀환할 경우 해당 지역 내에서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폴란드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공산 정권은 90년대초에 몰락하고 민주 정권이 들어섰다. 카자흐스탄 지역도 91년에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국이 되었다. 90년대 초에 양국은 공식 수교했다. 1996~1998년 기간 동안 카자흐스탄 내 폴란드계 인구 상당수가 폴란드로 귀환하였다.


2.3. 21세기[편집]


폴란드러시아와는 현재에도 갈등이 존재하고 견제하고 있지만, 카자흐스탄과는 96~98년 당시 폴란드계 인구 송환을 도와준 것을 계기로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내에는 일부 폴란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내 폴란드인들은 소련 해체 이후에 대부분이 폴란드로 이주했지만, 일부는 아직까지도 카자흐스탄에 거주하고 있다. 폴란드인들의 카자흐스탄 이주 역사는 2백여 년이 넘었고, 이러한 연유로 이들 가운데는 폴란드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인구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카자흐스탄 내의 폴란드인 커뮤니티는 천주교를 신봉하고 있지만,[2] 소련 시절 국가무신론 정책과 가톨릭 탄압 정책으로 대부분 지하교회로 운영되었던 상황이었다. 러시아인으로 동화된 경우에는 정교회를 믿거나 무신론 성향이 되었고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양국은 경제 교류도 활발하고 서로 관광객도 오고간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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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세한 내용은 폴란드계 호주인 문서 참조[2] 페트로파블로스크 시에 폴란드어미사를 드리는 성당이 있었다.